미리보기 · 시즌 2 · FREEDOM · EP 3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였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둘째 사슬을 푼다. 그런데 이 사슬은 기이하다. 죄의 사슬은 밖에서 채워지지만, 이 사슬은 자유한 자가 스스로 다시 메는 것이다. 바로 율법주의 — 은혜로 풀려난 자가 행위로 의를 얻으려 다시 종의 멍에로 돌아가는 일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어리석다" 책망한다. 그들은 십자가의 은혜로 시작했으면서, 어느새 율법의 행위로 그것을 완성하려 했다. 받은 자유를 노력으로 지키려는 순간, 그들은 다시 종이 되어 갔다. 십자가가 밝히 보였는데도 누군가의 꾐에 빠진 것이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3이 미혹은 오늘도 흔하다. 은혜로 구원받았다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은 "이만큼 했으니 받아 주시겠지, 이만큼 못 했으니 버림받겠지" 하는 계산으로 흐른다. 그것이 율법주의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적표로 바꾸는 것이다.
율법주의가 무서운 까닭은 거룩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 엄격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경건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은 두려움과 자랑 사이를 오가는 노예의 마음이다. 잘했을 때는 교만하고, 못했을 때는 정죄에 짓눌린다. 자유가 없다.
그러니 먼저 분별하자. 은혜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마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사랑받는 아들의 자리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는 종의 자리로 미끄러지고 있지 않은가. 다음 장에서 우리는 그 미끄러짐의 정체를 더 본다.
자유 한 걸음
비유로 보기 — 사면받은 죄수가 매일 스스로 형량을 채우려 노역한다면, 그는 받은 사면을 무효로 만드는 셈이다. 율법주의가 그러하다.
마음에 새기기 — "은혜로 시작한 것을 행위로 완성하려 하지 않는가"를 점검하라.
응답 — 하나님의 사랑을 성적표로 계산하던 한 자리를 내려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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